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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 오늘은 안돼. 만지지마"
그러나 철규는 아랑곳하지 않고 다시 경아의 앙징맞게 작은 팬티를 만지려고 한다. 경아는 철규의 가슴을 떠민다.
"아이, 그러지 말라니까."
"왜 그래?"
철규가 영문을 알 수 없다는 듯 묻자 경아는, 모르겠어. 오늘은 싫어. 하고 말한다.
그러나 경아는 자신이 왜 그러는지 스스로를 알고 있다. 경아는 이제 그만 철규와 헤어져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철규에게 싫증이 나기 시작한 것이었다. 경아는 철규를 보지 않으면 궁금하고, 만나면 반갑지만 그를 만날 때마다 새로운 것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가 식상해지고 있었던 것이다.
철규는 경아가 왜 갑작스럽게 심경의 변화를 일으키는지 이해할 수 없다. 철규는 경아에게 묻는다.
"왜 그러니? 무슨 일 있었어?"
"아니야, 그냥"
경아는 흐트러진 스커트를 바로잡는다. 아무래도 경아가 이상하다고 느낀 철규는 다시 한 번 확인하려 든다. 경아는 조금전까지만 해도 평소와 다름없이 자신에게 적극적이지 않았던가.
"경아, 너 이상해졌다. 갑자기 왜 그래, 응?"
그러나 철규의 거듭되는 물음에도 경아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는다. 잠시 입을 열지 않고 가만히 있던 경아가 철규를 바라본다.
"오빠, 이제 나 지겹지 않아?"
철규는 경아의 의외의 물음에 눈을 둥그렇게 뜨며 당황해한다. 경아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앞으로 경아에게 어떤 변화가 있으리라는 징조이다.
철규는 경아가 정말 이제 그만 만나자는 말을 하지 않을까 불안해진다. 그동안 자신이 경아에게 쏟은 정성을 생각하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리고 경아만큼 자신을 만족시켜 주는 여자를 다시 만날 수 있을 것 같지도 않다.
"경아야, 너 왜그러니? 무슨 일 있었구나. 그치?"
"오빠, 나 오늘 학교에 가야되거든. 그러니까 저녁에 다시 만날래?"
경아는 철규의 물음을 회피하면서 슬그머니 빠져나간다.
"그래. 그러자"
철규는 경아의 말에 얼른 동의한다. 더 이상 추궁해보았자 경아가 말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경아는 그날 학교에 갔다. 일주일에 두 번 있는 대학원 강의였다. 경아는 여자로서는 비교적 늦은 나이인 스물네살에 대학 생활을 시작했다. 늦게 입학한 대학인 만큼 경아는 거의 모든 과목에서 올 A를 받을 정도로 학업에 열중했다.
그렇다고 경아가 공부만 한 것은 아니다. 남들보다 더 열심히 자신의 젊음을 즐기는 데에도 소홀하지 않았다. 물론 그것은 학교 밖에서의 경아의 은밀한 사생활이긴 하였지만.
경아는 학업에도 요령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경아는 그 요령이라는 것을 적절히 활용할 줄 알았다. 이를테면 레포트나 시험을 치를 때 담당교수들이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의 핵심을 잘 짚을 수 있는 능력이 경아에게는 있었다. 또한 경아는 담당 교수들에게 적당한 애교와 예의를 지킬 줄도 알았다.
학부를 좋은 성적으로 졸업한 경아는 곧바로 대학원에 진학하였다. 경아는 이제 2학기 째이다. 경아는 대학교수가 되겠다거나, 학문을 하기 위해 대학원에 입학한 것은 아니다. 물론 그런 기회가 자신에게 다가온다면 거절할 필요는 없는 일이었지만 그럴 가능성에 대한 기대는 거의 하지 않고 있다.
경아가 대학에 들어간 것은 여자로서 자신의 특출한 외모와 함께 자신의 주가를 좀더 높이기 위해서이다. 현대 사회를 살아가려면 대학원 석사학위 정도는 지니고 있어야 어디 가서라도 주눅들지 않고, 상류사회로 올라는 첩경이 될 수 있다는 것이 그녀의 생각이다.
경아가 오늘 들어야 할 강의는 '문학의 이론'이다. 강의는 역시 세미나 형식으로 진행될 예정이고, 오늘 세미나의 발표자는 경아의 차례이다. 대부분의 수업이 세미나 식으로 진행되는 대학원 강의에 경아는 누구보다도 철저하게 사전준비를 해두었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자신의 발표일이 임박해서야 자료준비를 하지만 경아는 자신이 발표할 주제가 정해지면 그 다음날 바로 기초 자료조사를 끝내고 완벽하게 발표문을 작성해가는 치밀함을 갖추고 있다.
경아가 오늘 발표한 주제는 '러시아 형식주의'에 관해서이다. 경아는 자신이 준비한 발표문을 또박또박 낭독하고, 발표문에 대한 질의를 받으면서도 조금의 빈틈도 없이 완벽하게 답변하였다.
"이경아씨 오늘 준비를 잘해왔어요. 수고했어!"
강의가 끝나자 담당교수인 K교수가 경아의 완벽한 사전준비를 평가한다. 이것이다, 하고 경아는 생각한다. 경아는 이 한마디의 칭찬을 듣기 위해서 열심히 준비를 해왔던 것이다. 경아는 자신이 누구에게도 뒤지는 것을 참지 못한다.
스무살 때였다. 그때 경아는 회사에 다니고 있었다. 경아는 자신의 외모가 회사에서 가장 이쁘다고 생각하였는데 어느 날 대단한 적수를 만난 적이 있었다.
회사의 화장실에서였다. 생리중이었던 경아는 그날 화장실 안에서 차고있던 생리대를 바꾸기 위해 양변기에 걸터 앉아있었다. 그때 경아는 화장실의 거울 앞에서 손을 씻으면서 대화를 나누고 있는 미스 김과 미스한의 이야기를 우연히 엿듣게 되었다.
"얘, 지난달에 입사한 기획실의 강은희씨 있잖아"
"응, 왜에"
"미인이지 그지? 같은 여자인 내가 봐도 참 이쁘더라!"
"글쎄 뭐.... 내가 보기에는 이경아씨가 더 이쁠 것 같은데"
"아니야아. 얼굴은 이경아씨가 더 받쳐주지만 전체적인 것을 봐야지, 강은희씨는 몸매가 있잖아"
"이경아씨의 몸매는 뭐가 어때서?"
"어머, 너 모르고 있었구나. 글쎄 며칠전에 우리 회사 남자들이 여사원들 모르게 인기투표를 했다는 것 아니니. 그런데 가장 섹시한 여자로 강은희를 뽑았데"
"그랬니? 별꼴이야 정말, 남자들은"
"대체적인 평가가 이렇게 나왔대. 이경아는 얼굴이 이쁘지만 육감적인 몸매는 강은희가 더 낫다고"
"그래 하긴. 그건 내가 봐도 그렇드라. 이경아의 몸매도 끝내주지만 강은희가 워낙 강적이다보니.... 같은 여자인 내가 봐도 참 부러운 몸매인 거있지? 남자들은 잠자리에서는 얼굴보다 몸매있는 여자를 더 좋아한다면서?"
"호호호. 기집애 밝히기는. 그런데 남자들이 글쎄 한술 더 떠서 이경아의 얼굴에 강은희의 몸매를 합쳐놓으면 금상첨화겠더라는 거야"
"어머 넌 그런 얘기 어디서 들었니?"
"으응... 다 정보원이 있잖아"
"기집애. 너 박 대리한테 들었구나. 둘이 그렇고 그런 사이인거 모를까봐?"
"쉿! 회사에서는 비밀이다."
"알았어"
화장실 칸막이 안에서 미스 김과 미스 한의 이야기를 들은 경아는 그날 밤에 잠을 이룰수가 없었다. 남자들이 잠자리에서는 얼굴 보다는 몸매를 더 따진다며? 하는 미스 김과 미스 한의 대화를 잊을 수가 없었다. 회사에서 자신의 몸매보다 강은희의 몸매를 더 알아준다니. 지금까지 자신의 몸매에 대해 불만이 없었던 경아는 독기를 품었다.
그 다음날부터 경아는 다시 수영장에 나가기 시작했다. 아직 어디에 내놓아도 자신의 몸매가 빠진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던 경아는 더욱 선명하고 굴곡있는 몸매를 가꾸어가기 위해서였다. 경아는 헌신적인 노력을 하였다.
화장실에서 종아리에 샤워기를 틀고, 맥주병을 바닥에 눕혀 종아리를 문지르고, 줄넘기를 하고 등등 자신의 군살을 빼고 늘씬한 몸매를 가꾸기 위하여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 기울였다.
워낙 탄력있는 몸매를 자랑하고 있던 경아는 6개월만에 더욱 아름다운 자신의 몸매에 만족할 수 있었다. 경아에게는 역시 오기가 있는 무서운 여자였다.
경아는 강의가 끝나자 도서관에 들러 대출한 책을 반납하고 혼자 캠퍼스를 걸어내려왔다. 4월의 화창한 오후였다. 교정에는 벌써 개나리가 지고 있었고, 뒤늦은 진달래와 벚꽃이 만발하여 사라지는 젊음을 재촉하는 듯했다.
경아가 캠퍼스를 빠져나와 교문에 이르렀을때 누군가가 경아를 부른다.
"이경아씨!"
경아는 걸음을 멈추고 소리나는 쪽을 돌아보았다. 한정식이 빠른 걸음으로 다가오고 있다. 1년간 휴학했다가 이번에 복학한 선배이다.
"지하철 타세요?"
"네"
한정식이 경아의 옆으로 다가왔다. 경아는 걸음을 계속했다.
"오늘 발표 참 잘하시던데요."
"그래요? 고맙습니다. 좋게 봐주셔서"
"많이 준비하셨던가봐요."
경아는 한정식의 찬사에 미소를 지어보인다. 그러고보니 다음주에는 그가 발표할 차례이다.
"저는 학부에서 국문학을 전공하지 않아서 좀 힘들 것 같아요"
"어머, 그러셨어요? 그럼 무슨 전공이셨어요?"
경아는 놀라는 시늉으로 그를 바라본다.
"저는 신문방송학이거든요"
"네에"
"저는 부족한 점이 많으니 많이 좀 도와주세요"
"아녜요. 저도 별로 아는게 없어요..."
경아는 겸손하게 말한다. 학교 앞의 지하철 역 입구에 이르자 한정식은 머뭇거리며 "오늘 약속이 있으세요?" 하며 물어온다. 경아는 "네, 언제 차 한잔 하세요" 하며 그에게 인사를 하고는 지하도 안으로 걸어내려간다. 한정식은 학교앞의 고시원에서 머물고 있다고 하였다.
경아는 학교에 다니면서 은근히 그의 행동을 지켜보고 있었다. 약삭빠르거나 계산적인 면이 그에게는 보이지 않았고, 항상 조용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던 그에게 탐색의 기간을 가지고 있는 중이었다.
경아는 언젠가는 한정식이 자신에게 먼저 접근을 할 것이고, 그와 몇번 만나보고 그가 그녀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은 인물이라면 그와 진정한 교제를 해볼 생각이다. 물론 그가 가진 조건들이 경아를 만족시켜 주어야 하겠지만.......
경아에게 자신이 원하는 남자를 사로잡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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