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질투에 빠진 남자
다음 날은 아침부터 전화통에 불이 나기 시작했다.
I.M.F 시대임을 실감나게 했다.
열 시경부터 몰려오기 시작한 사람들과 면접을 하느라 점심도 응접실에서 시켜먹어야 할 지경이었다.
오후 네 시경 면접을 마감하고 그중 한 명을 낙점시키고 정보지에 공고를 빼달라 하라고 시켰다.
마칠 시간이 가까워 선이가 내 앞으로 손을 꼬며 다가왔다.
"왜 그래?"
"저 오늘 집에 데려가 주면 안 돼요?"
"어느 집?"
"아빠 집이죠!"
"글쎄? 집사람이...??"
곧바로 전화를 드는 거였다.
벌써 전화번호도 외워둔 모양이었다.
"사모님, 저 유선예요! 오늘 집에 놀러 가려고요? / 그건 제가 할 수 있어요! / 호호.. 그럼요! / 네, 네! / 그럴 게요!"
"거봐? 안 된다지! 다음에 오라지?"
"아뇨! 사모님은 좀 늦을 거 같다며 먼저 들어가서 오빠들과 인사도 하고, 저녁도 챙겨 먹으랬어요! 히힛!!"
그럴 리가 없는데.. 그래선 안 되는데...
갈피가 안 잡히는 마음속에 팔짱을 끼고 나선 그녀를 차에다 태우고 집으로 향했다.
걔들 엄마가 이미 통보한 듯이 두 놈이 엘리베이터 밑까지 내려와 있었다.
젊은 걔들은 벌써 통한 듯 집에 들어서자마자 서로 제 방을 구경하라며 끌고 다녔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선이를 아내에게 뺏기기도 전에 애들에게 먼저 뺏길 것 같다는 예감을 했다.
내가 옷을 갈아입고 소파에 앉아 있자 슬며시 다가온 큰놈이 동생이 정말 마음에 든다는 말을 했다.
아마도 진심인 듯 했다.
선이와 작은놈은 주방에 나란히 서서 저녁을 준비하며 깔깔거리고 있었다.
그들의 표정으로 보아 선이를 그들 동생으로 이미 인정하는 모습이었다.
그런데 넷이 식사를 하며 작은놈과 선이가 나란히 앉은 모습이 내 눈을 거슬리게 했다.
나는 몇 술 떠다가 수저를 놓고 바람 쇤다며 나와 버렸다.
질투였을까?
아파트 안 공원벤치에 앉아 애꿎은 담배만 연달아 피워댔다.
저 앞에서 아내가 걸어오고 있었다.
"아니, 당신? 걔는요?"
"안에 있어!"
"왜요? 걔들끼리 친해지라고..?"
"응!"
아내가 옆자리에 앉았다.
"방학 끝나면 저 다시 매일 늦을 텐데.. 아예 걔를 집으로 들여놓을까요?"
"식모에다 파출부 삼으려는 거야?"
"그건 오해예요! 제 말은.."
"알아 알아! 가족이란 서로 돕는 게 가족이 아니냐는 말일 테지..."
"그럼 당신 생각은 뭐예요? 그걸 얘기해 주셔야 제가 거기 맞출 거 아니에요?"
"나는 단지 우리 애들이 그 애를 동생으로 느끼기 전에 이성으로 느낄까봐 걱정이야!"
궁색한 변명이었다.
어쩜 그 말은 애들에게가 아니라 내 자신에게 반문하는 변명이었다.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아직 사춘기인 혁이에겐 그렇게 느껴질지도.. 더구나 걘 고3이니까..."
"조금 기다리자고! 그 놈도 대학생이 되고 나면 눈이 무뎌질 테지.."
"알았어요! 그럼 올라가요?"
우리가 올라 왔을 때 큰놈은 TV 앞에 앉아 있었고, 둘은 그놈 방에서 게임을 하고 있었다.
아내는 그들을 보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
"너희들 떨어져서 앉지 않아!!"
한 의자에 엉덩이를 맞대고 앉아 작은놈의 손이 선이의 어깨를 두르고 있었던 것이다.
선이가 버럭 지른 소리에 벌떡 일어섰다.
아내는 둘을 세워두고 훈계를 하기 시작했다.
"너희들 오늘 처음이야! 처음부터 그렇게 가까워진 모습 보기 좋지만 옛말에 '남녀유별'이라 하여 남녀간엔 구별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 있어! 그러니 서로의 몸가짐을 바로 해야 한다. 오누이간도 형제 이상의 정을 느끼면 안 돼! 알았지??"
큰놈은 그럴 줄 알았다면서 작은놈의 머리를 툭 쳤다.
그 방에서 나온 선이가 어찌할 바를 몰라하는 모습을 보자 이제 걔를 집에다 데려다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 오늘 인사들을 했으니 이제 돌아가자! 또 놀러 오면 되니까.."
"그래! 모레가 일요일이니 종일 놀다 가!"
"알았어요 사모님!"
"이제 엄마라 불러도 돼!"
아내가 내 얼굴을 쳐다봤다.
인정해도 당신 불만 없지요? 하는 표정 같았다.
나는 그녀의 어깨를 밀고 나왔다.
"안녕히 계세요! 어.머.니..!"
엄마란 말은 안 나오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선이의 표정은 설레임에 함빡 젖어 있었다.
엘리베이터를 나와 차로 다가서는데 위에서 소리치는 아내의 소리가 들렸다.
"차 열쇠!!"
덤벙대고 나오느라 집에서 입던 옷 그대로였다.
조금 있자 큰놈이 차 키와 면허증이 든 지갑을 들고 내려왔다.
큰놈은 그녀의 어깨를 두드리며 일요일날 꼭 놀러 오라고 말했다.
집에까지 오는 동안 우린 아무 말이 없었다.
나는 그녀의 집에 가까워지자 집 앞에 내려주고 바로 돌아가야지 마음을 다그쳤다.
아니, 그녀가 집으로 들어가면 돌아서리라 마음을 바꿨다.
그러나 차에서 내린 그녀가 촐랑촐랑 들어가질 않고 운전석 옆에 서 있는 모습을 보자 "그래, 안에다 데려다 주고 가자!"고 또 마음을 바꾸고 있었다.
그새를 못 참고 그녀는 팔짱을 끼고 집안으로 들어섰다.
열쇠로 문을 열고 다시 팔짱을 꼈다.
방안으로 들어서자 그녀는 와락 안겨왔다.
"아빠! 이대로 지내면 안 될까요?"
"왜? 겁나니?"
"응!!"
"이 아빠도 그래! 너의 자유를 깰 것 같아서..."
나의 속심을 감추려는 얄팍한 변명이었다.
얇은 옷 너머로 그녀의 굴곡이 그대로 전해져 왔다.
내건 이미 부풀어 그녀의 배를 찌르고 있었다.
마냥 이렇게 있고 싶지만 이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빠!"
"응?"
"저 끝까지 지켜주실 거지요?"
"응!"
"그럼 뽀뽀해 주세요?"
당돌한 도전이었다.
그녀는 눈을 꼭 감고 턱 밑으로 입술을 내밀었다.
불도 켜지지 않은 방에서 그런 당돌한 도전은 정말 참기 힘들었다.
나는 살며시 그녀의 뒷머리를 두 손으로 받쳐 올렸다.
그녀의 눈꺼풀이 떨리고 있는 게 보였다.
나는 조용히 입술을 내렸다.
그녀의 손이 내 허리를 휘감고 당기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입술이 내 입술을 받으려 까치발로 서는 게 느껴졌다.
나는 그녀의 이마에다 쪽! 소리를 내고는 그녀를 살며시 떼어냈다.
황망한 눈으로 바라보는 그녀에게 나는 이렇게 말하며 방에다 불을 켜주고 빠져 나왔다.
"아빠도 너만큼 내 딸을 사랑한단다! 예쁜 꿈꾸며 자!!"
돌아오는 나는 자신을 칭찬하고 있었다.
잠자리에 든 아내는 내가 했던 말이 현명할 것 같다는 말을 했다.
나는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으나 노골적으로 나타낼 수는 없었다.
대신 선이에게 자주 왕래시키며 한 가족이라는 소속감을 심어주자고 말했다.
아내는 그보다 걔를 이때껏 키워준 양육원에 들러 이 사실을 알려야 하지 않겠느냐는 말을 했다.
그건 나도 잊고 있었던 시급히 해결해야 할 현안이었다.
그녀는 아마도 그곳에서 가출 소녀로 신고되어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다음 주쯤 선이를 데리고 아내와 내가 함께 가서 해결하자고 했다.
다음 날 출근하자마자 사무실에 선이만 앉혀 두고 A사로 들어갔다.
납품 대금을 수금하는 문제도 있었고, 휴가를 끝낸 이들에게 인사도 하기 위해서였다.
현장을 돌며 대충 인사를 끝내고 구매부로 올라갔다.
휴게실에 기다리고 있는 데 충길이가 결재 어음을 들고 나타났다.
나는 커피를 뽑아 들고 그를 구석자리로 끌어다 앉히고 제수씨에 대한 진지한 얘기를 나눴다.
그도 그녀를 그대로 두어선 안 되겠다며 병원에라도 데려가 봐야겠다며 위기감을 토로했다.
나는 그가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일까봐 아내에게 들은 이야기나 나와 있었던 일을 말하지 않았다.
병원은 어디로 데려가 볼 거냐 하니까 '신경정신과'로 가봐야지 않겠느냐고 말하며 가려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사무실로 돌아오는 내 마음은 무거웠다.
그들 부부의 위기를 바라보는 내 심정은 남의 일 같지가 않아서였다.
아내처럼 소심하지도 않고, 매사 당당하기만 했던 제수씨가 충길이의 성 침몰로부터 시발한 좌절이 그녀를 그리 쉽게 무너뜨리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마냥 포근하기만 하고 순종적인 아내는 충격이 가해져 왔을 때 그녀보다 더 빨리 침몰하고 말 것이다.
지금 상황으로 보면 그 뇌관은 선이가 될 건 너무나 자명한 일이다.
내가 지금 겉으로 드러나지도 않은 양가의 문제를 너무 확대 해석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그걸로 위안을 하며 마음을 일단 털었다.
나는 사무실 앞에 놓인 정보지 몇을 걷어들고 사무실에 들어서는데 그녀가 싱글벙글하며 나를 맞았다.
"미스 진! 뭐 좋은 일이라도 생겼어?"
"네, 사장님! 저 데이트 신청 허락 받았걸랑요!"
"신청이 아니고 허락을?"
"네!!"
"뭘까?"
"오늘 토요일이니까 분명히 오전근무 맞죠?"
책상 앞을 주섬주섬 챙기며 곧 일어설 태세였다.
나는 그녀의 손목을 쥐었다.
"대체 무슨 일인지나 좀 알자? 이 아빠에게 못할 이야기도 있냐??"
"아유, 아빠 질투하시네! 누구긴 누구겠어요? 사모님, 아니 엄마예요! 거기 일 도와주러 가기로 했다고요!!"
'허락'이란 그녀가 먼저 전화하여 그래도 되겠느냐고 물어서 허락 받았다는 말인 것 같았다.
어제 밤엔 분명히 "아빠! 이대로 지내면 안 될까요?"라 묻던 그녀였다.
나는 마음이 혼란스러웠다.
먼저 퇴근한다며 나서는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고만 있었다.
아침에 출근하면서 토요일인 오늘 오후 그녀를 데리고 영화를 보러가리라 결심한 나여서 볼만한 영화를 알아볼 요량으로 정보지를 걷어온 것이었다.
나는 손에 든 걸 사정없이 쓰레기통에 쑤셔 박았다.
혼란한 마음을 추스려보려 납품서류들을 뒤적대다 해가 기우는 걸 보며 집으로 돌아왔다.
집은 텅 비어 있었다.
냉장고와 찬장을 뒤져봤지만 술은 없었다.
꿩 대신 닭이라 생각하고 콜라를 한 잔 부어들고 서재로 들어와 책을 읽기 시작했다.
나는 젊은 시절 거의 책벌레라 할만큼 책을 좋아했다.
그래서 우리가 아파트를 사 나오면서 방 4개를 고집하여 그 중 하나를 내 서재로 만들었던 것이다.
거의 한 시간 여 책을 읽었을까?
아니, 읽는 척 했을까 배가 고파오기 시작했다.
시계를 들여다보니 9시가 넘어 있었다.
나는 밖에 나가 초밥 하나 시켜놓고 술이나 한잔하고 와야겠다고 생각하고 방을 빠져 나왔다.
아직 휴가철이라 그런지 아파트 앞 초밥집은 설렁했다.
먼저 술부터 날라져 왔다.
단 몇 잔에 취기가 올랐다.
곧 초밥이 말아져 날라 왔다.
접시 옆에 놓아든 와사비를 더 찍어 바르고 몰캉 집어넣고 꾹 씹었다.
매운 기운이 확! 하고 입안을 쏘았다.
입천장은 물론 다리 끌까지 찔끔 아려왔다.
그건 영락없는 내 인생이었다.
나는 와사비보다도 더 매울지도 모를 어린 소녀를 탐내며 몸을 달구고 있는 것이다.
다시 술을 털어 넣었다.
그때 주인이 "어서 오세요!"했다.
여자 둘이었다.
모녀인 듯 팔짱을 끼고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그녀들은 다름 아닌 아내와 선이였다.
"아니 여보?"
"당신이야말로..?"
"우린 당신에게 미안하여 초밥이나 사들고 가려고 왔죠!"
"앉아!"
"우린 저녁 먹었어요! 너 콜라 한잔할래?"
아내는 자리에 앉으며 선이를 챙겼다.
얄밉게도 선이는 마냥 행복한 표정이었다.
"딸과 데이트하니 좋지?"
"얘 오늘 욕봤어요! 오늘따라 손님이 많아서..."
아내가 그녀의 손을 꼭 쥐는 게 보였다.
콜라 한 병과 술잔이 날라져 왔다.
나는 아내의 잔을 채워줬다.
회 한 접시와 술을 더 시켰다.
"내일도 데리고 나갈 거야?"
"왜요? 얘 뺏길까봐 겁나요?"
"그건 노동학대야! 내일은 법정 공휴일이라고...?"
나는 찔끔하여 내뱉은 말이지만 궁색하기만 했다.
"걱정 말아요! 내일은 애들과 약속했으니..."
아내의 프로그램은 생각보다 철저한 듯 했다.
앞으로 가면 갈수록 더할 것이리라는 예감이 들었다.
그 자리에서 일어섰을 때 나는 그녀들을 떠보려 선이에게 이런 말을 했다.
"오늘 아빠가 취해서 못 바래다 줄 거 같애! 너 혼자 갈 수 있겠어?"
"아니 당신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이 야밤에 어딜 보내려고..? 내일 아침에 오느니 집에서 재우면 되죠?"
"어디다?"
"당신 서재에.. 아니, 당신이 서재에 주무시고, 얘는 나와 큰방에 자는 게 낫겠어요!"
아파트로 걸어 들어오는 내 발걸음은 풀려 있었다.
딸 하나 주어다 그녀에게 바친 기분이었다.
현관을 들어서자 두 놈이 나와 그녀를 맞았다.
나에겐 꾸벅 인사만 하는 것 같았다.
소파에 벌렁 누워버린 내 앞에 세 놈이 앉아 조잘거렸다.
아내가 서재에다 내 이불을 까는 모습이 보이자 눈을 감아 버렸다.
서서히 몸을 나약하게 만드는 취기와 함께 허탈감이 온 몸을 에워쌌다.
잠시 잠이 든 걸까?
내 몸을 들어 옮기는 감촉이 느껴졌다.
눈을 떴을 때 큰놈의 얼굴이 근심어린 표정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강우구나!"
"아버지 보약 좀 드세요?"
"왜 그러니?"
"아버지가 너무 가볍게 느껴져서요!"
"그건 내가 컸으니 그렇겠지! 그리고 너도 걔가 그렇게도 좋으니?"
"두 분이 좋아하시니까요!"
"그랬구나... 이제 가서 자거라!"
"네!"
큰놈이 물러가고 나는 다시 잠에 빠졌다.
아침이 된 듯했다.
누군가 나를 깨우고 있었다.
"아빠! 이제 일어나세요?"
선이의 목소리 같았다.
눈을 뜨자 내 손을 꼭 잡은 한 소녀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소녀의 작은 손이 내 눈곱을 떼어주었다.
생글 웃는 모습이 선이가 맞았다.
어지러운 꿈을 생각하며 혹시 그녀의 집이 아닐까 둘러보자 분명히 내 방이었다.
나는 벌컥 그녀를 안으려던 마음을 지우며 허리를 일으켰다.
그녀가 물 사발을 내 밀었다.
"잘 잤니?"
"네! 아빠도?"
"응! .... 엄마는..?"
"아침 준비하세요!"
그녀의 머리칼이 젖어 있었다.
까만 머리칼이 더 까매져 보였다.
"머리 감았구나!"
"새벽에 엄마와 목욕 갔다 왔어요! 헤헤.."
그녀는 뽀얘진 목살을 들어 보였다.
행복한 표정이었다.
딸애들만 키우는 남자들이 아들 손잡고 목욕탕 가는 게 그렇게 부럽다고 하더니 아들만 키워온 아내도 그랬을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고서야 선이와 같이 자고 난 첫날 새벽에 그녀와 목욕을 갔을까?
그녀가 내 손을 잡고 일으켜 세우며 말했다.
"엄마가 아빠 깨워서 물 떠 오랬어요!"
그녀를 함께 공유하자는 아내의 메시지라 짐작했다.
밖을 보자 훤했으나 아직 해가 뜬 것 같지는 않았다.
아직 애들 방은 조용했다.
아내가 싱긋 웃으며 건네준 물통을 들고 우린 집을 나섰다.
엘리베이터가 올라오길 기다리면서부터 낀 팔짱을 오솔길을 걸으면서는 두 팔로 감싸 안고 걸었다.
"지난밤 엄마가 널 안고 잤니?"
"손잡고서..!"
"행복했겠구나 너?"
"네!"
"이 아빠와도 그러고 싶어?"
"응!"
거침없이 말했다.
팔에 대인 가슴살이 느껴졌다.
아마도 맨살 같았다.
"너 맨살이구나?"
뭔 말인지 몰라 고개를 갸우뚱했다.
"다 큰 애가...?"
"아! 그거? 엄마가 새 걸로 준댔어요!"
"엄마 걸?"
"그건 몰라요?"
약수터에 가까워지자 여기저기 앉아서 쉬거나 운동을 하는 모습들이 보였다,
그녀는 내가 저번에 사준 그 옷차림이어서 보기가 어색하여 말했다.
"아빠가 추리닝을 하나 사주어야겠구나?"
그녀가 생글 웃었다.
우린 물을 받아 두고 나무벤치에 앉았다.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발갛게 모습을 들어올리자마자 그건 뜨거운 화살을 쏘아댔다.
내려오는 길에서 그녀는 이런 날이 있으리라고는 꿈도 못 꾸었다는 말을 했다.
그건 오로지 아빠 덕이라는 말도 했다.
집에 도착했을 때 애들도 일어나 있었다.
작은놈이 자기도 안 데려갔다고 투정을 부렸다.
그놈 저번엔 따라가자 했더니 안 간다 했던 놈이었다.
고얀 놈...
아침 식사가 끝나자 아내는 출근을 하고 선이를 둘러싼 남자들만 남았다.
혹시나 하고 선이의 뒷모습을 보자 어깨 아래로 그 끈인 듯 볼록 드러난 모습이 보였다.
어떻게 알았는지 작은놈이 선이의 학업 문제를 제기했다.
"얘 아직 학생인데 아빠 회사에서 일 시킬 수 있어요?"
"그냥 아르바이트하는 거야! 그리고 곧 학교도 다시 다닐 거니 너는 네 걱정이나 해!"
"아버지! 혁이 말도 일리가 있어요! 학업도 때가 있는 거니 서둘러야 할 거 같아요?"
"알았다 알았어! 나 숨 좀 쉬자!"
첩첩산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사무실에나 나가봐야겠다 생각하고 주섬주섬 옷을 바꿔 입으면서 큰애를 불러 어둡기 전에 선이를 보내라는 말을 하고 나왔다.
사무실로 들어와 막상 책상 앞에 앉았지만 일이 제대로 될 리 없었다.
일의 성격상 거의가 전화로 이루어지는 일이라 한 여름 휴일날 나처럼 사무실에 나올 이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나처럼 미친 이가 있어서 일 처리를 몇 건 했다.
두 시쯤 짜장면을 배달시키며 술 한 병도 시켰다.
술 한잔 먹고 낮잠이나 자기 위해서였다.
나는 응접실 소파 위에 누웠다.
갖가지 상념에 몸을 뒤척이다 잠이 들었다.
문이 열리는 소리에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켰다.
벌써 어두워져 있었다.
사무실에 불이 켜지고 발소리가 응접실 쪽으로 걸어왔다.
선이였다.
"저 이러실 줄 알았다니까?"
마치 아내의 목소리를 흉내내는 것 같았다.
나는 일어나 화장실로 들어가 얼굴에다 물을 껴 얹었다.
펴 내미는 수건을 받으며 말했다.
"오늘 잘 놀았어?"
"네!"
"뭐 하고 놀았어?"
"게임도 하고.. 퀴즈도 하고.. 그 보다 아빠! 우리 집으로 가요? 거기서 저녁 드시고 가세요?"
선이의 '우리'라는 말에 야릇함을 느꼈다.
사무실 앞에는 짜장면 그릇과 빈 술병이 그대로 있었다.
그녀가 그걸 들고 나와 1층 밖에다 내어놓고 문을 잠궜다.
차에 오르며 그녀가 말했다.
"아빠 술 너무 자주 드시는 거 같아? 담배도 많이 피시고..!!"
"차차 줄이마!"
"정말? 약속!!"
정말 나의 술버릇이 변했다.
일을 현명하게 처리하려는 냉철함은 사라지고, 만사 쉬이 포기하고, 짜증도 내고, 여자처럼 질투도 생기고.. 그러다 귀찮아지면 술 생각부터 나는 것이다.
요즘은 모든 걸 술로 잊으려 하는 버릇이 생긴 것이다.
그녀 집으로 가는 중에 백화점에 들러 아침에 약속한 그녀의 추리닝을 한 벌 샀다.
방으로 들어서자 그녀는 냉큼 내 앞에서 그걸 갈아입어 보였다.
나는 민망하여 시선을 돌렸다.
그때 "아빠 이거!"하며 등을 쿡 찔렀다.
추리닝 아래는 끌어올리고 위를 껴입다 말고 가슴을 드러내 보였다.
그녀의 손가락이 가리킨 것은 앙증맞은 브레지어였다.
아내가 그녀에게 주겠다 했던 것이 그거였던 모양이었다.
"참 예쁘구나!"
"이것만이 아니고 팬티도 주셨는데 그건..."
"벌써 돌아왔어?"
"아침에 주셨어요. 미리 사두신 거래요. 호호.."
내 마음에 다시 너울이 일기 시작했다.
아내가 나보다도 더 딸을 원했던 게 아닌가 생각되었다.
어쨌든 아내의 유별난 그 행위들은 나의 가슴에 질투심을 유발시켰다.
< 계속 >
sports바로가기
casino바로가기
카톡바로가기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