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맑은 날에도 하늘은 잿빛이다.
거기까지 올라오는 택시가 거의 없어서 대로까지 내려와 택시를 잡아 집에 도착했을 때엔 3시가 가까워 있었다.
잠에 빠진 아내를 깨우지 않기 위해 이불을 들고 나오려는 데 아내의 말소리가 들렸다.
"그만 여기서 주무세요?"
"깨고 말았구나! 당신 안 깨우려 서재에 가 자려 했는데..."
"애들도 좀 생각하세요! 요즘 당신 너무 과음하시는 거 같아요?"
"오늘은 새 친구가 들어와서 어쩔 수 없었어."
"내일 모레면 당신 쉰이세요? 어제의 당신이 아니라고요..."
그런 말로 대충 묻어주긴 했지만 그녀는 정작 하고픈 말을 속으로 삭이고 있는 게 확실했다.
그게 선이와의 일이라는 건 두말 할 나위 없었다.
나는 잠이 오지 않았다.
우리의 방에도 달빛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그러나 그 빛은 선이의 방에서와는 달리 창백한 빛이었다.
그런 센티멘털한 느낌도 들지 않았다.
그저 우리들 나이만큼이나 닳고 헤어져 너덜너덜하게 느껴질 뿐이었다.
선이의 방에서의 빛이 건드리면 톡! 터질 듯한 빛이었다면, 이 방에서의 빛은 옅은 숨소리에도 허공으로 흩어질 빛이었다.
그래서 돌아누운 아내가 몰래 내쉬는 한숨에 허물어져 나뒹구는 빛의 포말들을 나는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아내도 그걸 알리라.
자신이 내 뱉을 말 한 마디에 이때껏 지켜온 신뢰의 벽에 구멍을 내고 스스로를 그 구멍 안에 가두고 말리라는 사실을..
그래서 차마 두려워 스스로 삭이려 안간힘 쓰고 있으리.
나는 등 돌린 아내에게서 항거보다 더 무서운 체념을 느껴야 했다.
며칠 후 우린 충격적인 소식을 접해야 했다.
제수씨가 집을 나가버린 것이다.
집에 들어간 나를 술 취한 충길이가 불러내면서 알려졌다.
충길이가 불러낸 곳은 시내 술집이었고 그는 몹시 취해 있었다.
집 나간지 사흘이나 지났다고 했다.
집 나가기 전날 병원에 한번 가보자고 했다가 몹시 싸웠다고 한다.
그렇게 집까지 나가 버릴 줄은 자기도 몰랐다며 그녀에 대한 푸념을 늘어놓았다.
그녀가 갈만한 곳을 다 알아봤느냐 물으니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내 아내조차 모른다면 모진 결심을 한 것이 분명했다.
나는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그를 그의 집 안방에까지 끌어다 놓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내는 어찌 되었냐고 물었다.
그녀가 갈 만한 곳이 없느냐 물어도 아내도 집히는 게 없다고 말하다가 혹시 같이 대마를 했다는 그 미망인을 찾아간 게 아닐까 하며 내일 수소문해 보겠다 했다.
나는 다가온 B사의 초도 납품 일로 그 일에 신경 쓸 겨를조차 없었다.
이미 납품자재의 선이 확보된 A사와는 달리 B사의 제품 사양을 충족하는 자재를 수급하는 일은 생각만큼 쉽지가 않았다.
납품일이 다가올수록 내가 너무 느긋하게 생각하고 있었다는 게 여실히 드러나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더구나 자재 선을 알아냈으나 나와의 거래가격(그 이상의 숨은 뜻이 있었다)으로는 안 하겠다 버티는 데는 혀를 내두를 지경이었다.
결국 난감해진 나는 B사로 들어가 김 과장을 끌고 오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다행히 기꺼이 몸을 던진 김 과장이 내 사무실에 종일을 머물며 반은 협조, 반은 협박으로 자재 선을 확보해 주므로 숨통이 트였다.
그는 저녁 술자리에 들러 노골적으로 자신의 속심을 드러냈다.
이사님을 만날 일이 있으면 자신의 신상 처리를 부탁해 달라는 것이었다.
이미 예상한 바여서 나의 옛일을 말해주며 동병상련의 이심전심이 아니겠느냐고 말해 주었다.
그는 충길이도 한번 뵙고 가야겠다 했으나 집에 일이 생겨 촌에 가고 없다고 둘러댔다.
내 일이라면 물불 안 가리는 충길이지만 지금 충길이는 그와 노닥댈 심정이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술이 된 그를 여관에다 집어넣고 내일 새벽에 실어드리겠다 하고는 물러 나와선 카운트에서 아가씨 차-지까지 지불하고 나왔다.
한숨 돌린 나는 그 마음을 먼저 선이에게 전하고 싶어 안달하고 있었다.
택시에 내려 그녀가 있는 골목을 뛰어 오르며 숨이 차는 줄도 몰랐다.
그녀의 창은 캄캄했다.
시계를 들어다보니 2시가 가까워 있었다.
부엌문을 몇 번이나 두드렸을 때 창에 불빛이 비치며 누구냐고 묻는 목소리가 들렸다.
"아빠야!"
후닥닥 문이 열렸다.
들어서자마자 그녀가 나를 껴안았다.
"아빠 여기서 눈 좀 붙이고 새벽에 또 나가봐야 해!"
"몇 시에..?"
"다섯 시쯤!"
"그럼 빨리 들어오세요!"
그녀가 누웠던 이불 위로 풀썩 누웠을 때 그녀가 물었다.
"엄마에게는..?"
"여관에서 손님과 잔다고 했어!"
잘 했다는 듯 곧 바로 불을 끄고 내 품으로 파고들어 왔다.
그러나 내 옷차림이 마음에 안 드는지 벌떡 일어나 앉으며 말했다.
"이렇게 자면 푹 자지 못해요? 제가 벗겨드릴게요!"
내 와이셔츠와 바지를 벗겨 옷걸이에다 걸고 다시 들어왔다.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나만의 생각일 테지만) 손을 그녀 가슴에 모두고 포근히 안겨 있었지만 나로선 정말 참기 힘든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목석처럼 잠들 수 있는 남자가 있기나 할까?
나도 모르게 "헉-!"하고 힘겨운 숨소리가 터져 나갔다.
"빨리 잠드셔야 하는데.. 기껏 세 시간 뿐인데... 아빠 내가 다리 주물러 드릴까요?"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이불을 젖힌 그녀가 내 다리를 주무르기 시작했다.
나는 배를 깔고 누어 버렸다.
그러는 편이 그녀나 나나 서로 편하리라 여겼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나는 마음속에서 심한 싸움을 벌이기 시작했다.
이대로 넘길 것인가? 에라 모르겠다! 몸이 요구하는 데로 버려 둘 것인가...?
만약 후자를 택할 경우 모든 게 무너질 건 너무나 뻔하고, 그녀도 잃게 될 거라는 두려움이 있었기에 힘든 싸움이었다.
전자를 취하려면 당장 그녀의 손을 치우라 해야 할 것이지만 나는 그러질 못하고 있었다.
달랑 팬티뿐인 내 몸에 닿인 그녀의 손은 심한 자극이었다.
그 손이 허벅지까지 올라왔다 다시 내려가고 이번에는 허리와 엉덩이도 주무르고 있었다.
"이제 바로 누우시고 편히 잠드세요!"
나는 그 말이 이제 그만하겠다는 말인 줄 알았다.
그러나 그녀는 바로 누운 나의 다리를 타고 내려가 발가락에서부터 다시 주물러 올라왔다.
꾹꾹 누르는 그녀의 손이 정강이를 지나 허벅지에 다다랐을 때 나는 그녀의 손을 덥석 잡았다.
반사적으로 그녀는 손은 떨고 있었다.
나는 그 손을 이미 터질 듯이 불룩 선 그 위에다 덮어 눌렀다.
"아빠가 너무 힘들구나?"
"알아요 아빠! 그러나 절 지켜주실 거죠?"
"그래! 넌 내 딸이잖니....!"
그건 마지막 변명이었다.
그녀의 손을 팬티 속으로 밀어 넣자 부끄럽게 거머쥐었다.
나는 숨마저 멈추고 있는 그녀의 얼굴을 가슴에 품어 안았다.
"이대로 잠들 수만 있다면...?"
속으로 내 깔인 말이 새어나가고 말았다.
"아빠! 이 다음엔 어떻게 해드려야 해요?"
"그냥 쓰다듬어 줘! 아빠가 하듯이..."
나는 그녀의 등을 쓰다듬었다.
내 손이 그녀의 허리까지 내려가자 몸을 끌어올리며 엉덩이에 내 손이 닿게 했다.
나는 그 엉덩이를 쓰다듬다가 손아귀에 꽉 잡았다.
그녀도 그렇게 하고 있었다.
자극적인 그녀의 손은 금방 나를 폭발시킬 것 같았다.
한껏 달아오른 내 손이 그녀의 옷 속으로 파고들며 엉덩이 맨살을 쥐었다.
그 조금 더 아래 아무도 찾지 못한 그녀의 보물섬이 있을 것이다.
순간 내 것이 벌떡거리며 터지고 있었다.
그녀도 당황한 모양이었다.
어찌할 바를 몰라하며 간신히 손으로 덮고 있었다.
아마도 비산한 욕정의 덩어리가 그녀의 옷이랑 이불 위에도 튀었으리라.
나는 머리 위의 휴지를 뽑아 그녀의 손바닥부터 닦아주었다.
다시 뽑은 휴지로 내걸 닦았다.
"불 켜봐!"
그녀는 문가 스위치 옆에 서서 내 모습을 지켜보았다.
이불 위에 흐른 걸 대충 닦아 휴지통에 집어넣자 불을 끄고 내게 안겨오며 말했다.
"아빠! 이제 시원하세요?"
"네게 미안하구나!"
"미안하긴요? 오히려 고마워요!"
"널 지켜줘서..?"
"그게 아니라 솔직한 모습 보여주셔서...!"
"솔직하다..? 해선 안된 짓인 걸..."
"그런 말 하시면 저 싫어요!"
그녀는 어느새 시든 그걸 꼭 쥐었다.
이제 그 손을 거두어낼 이유도 명분도 잃었다.
아니, 오랜 바램이었을 지도 모른다.
그녀가 나를 흔들어 깨웠을 때 정확히 다섯 시였다.
괘종소리조차 안 들린 걸로 보아 그녀는 한숨도 안 자고 날을 샜는지도 모른다.
나는 세수만 간단하게 하고 옷을 챙겨 입고 나왔다.
그(김 과장)도 비슷했으리라.
돈을 챙기고 들어간 아가씨가 돈 값을 하지 않았을 리도 없고, 그 또한 모처럼의 기회를 팽개쳤을 리 만무할 일이다.
그를 태우고 달리는 새벽 도로는 상쾌하여 잠은 오지 않았다.
그의 회사 앞에 차를 댔을 때 그는 잠들어 있었다.
그를 회사로 들여보내고 돌아오는 길에 나는 잠시 차를 세우고 눈을 붙였다.
사고 때문만은 아니었다.
피곤한 내 모습을 직원에게 보일 수는 없다는 내 판단 때문이었다.
사무실에 도착했을 때 점심 시간이 가까워 있었다.
혼자 앉아 있던 미스 진이 책을 보다 후닥닥 숨겼다.
아마도 내가 사다준 책이 아닌 여성지 같았다.
나는 모르는 채 내 자리에 앉았다.
커피를 들고 온 걔의 표정은 약간 상기되어 있었다.
지난밤의 일 때문일 것이다.
"너 양육원 문제와 학업 문제도 해결해야 하는 데 갑자기 아줌마(제수씨) 일이 생겨서...."
"전 이대로가 좋아요!"
"영원히 도망자로 살래? 그럴 순 없잖니?"
"아마 양육원에서도 알 걸요. 언니가 얘기 안 했을 거 같아요..?"
"좋게 얘기하진 않았겠지?"
"그 언니 안 그래요. 싸우고 가긴 했어도 의리는 있어요."
"의리? 하하하.."
그때 핸드폰이 울렸다.
"당신 어디예요?"
"사무실인데 왜?"
"윤영이 있는 델 알아내긴 했는데..."
"어딘데?"
"그건 만나서 얘기하고 제가 바로 사무실로 갈게요!"
"충길이에겐 알렸어?"
"너무 충격적인 일이라.."
"알았어! 내가 그리로 갈게!"
아내는 가게문을 철시하고 날 기다리고 있었다.
차에 오른 아내는 XX寺로 가자고 했다.
제수씨가 머리를 깎았다는 이야기였다.
집 나간 지 벌써 보름이나 지났으니 그럴 만도 했을 지 모른다.
독실한 불교 신자였던 그녀가 마지막 선택을 한 지도 모른다.
저녁마다 술 취한 충길이를 보는 것도 이제 지쳐 갈 지경이었다.
기껏 내가 해 줄 수 있는 일이란 게 술이 떡이 된 그를 끌고 그의 집에다 끌어넣고 오는 거 외 마땅히 할 일이 없었다.
아내 또한 그 집 빨래며 애들 뒷바라지 챙겨주는 일 외 더 할 일이 막막하던 처지였다.
충길이를 위로하려 은근히 안아 보아도 미안하다며 뿌리치기만 했다고 한다.
XX寺는 비구니만이 사는 절이다.
차를 입구에다 세우고 한참이 걸어 들어가야 하는 이 길은 벌써 여러 번 와 보아서 익숙했지만 꼭 처음 가보는 길 같았다.
아직도 휴가를 즐기는 텐트들이 절 아래까지 쳐져 있었다.
절이 여러 채라 어느 절에 들어 있는지 우선 물어야 했다.
아내도 그녀와 함께 여기 여러 번 다녔는지라 아내를 알아 본 어느 스님이 우리를 안내했다.
스님의 말로는 그녀는 아직 입산한 상태가 아니며, 그저 마음을 다스리느라 암자에 머물러 있다 하였다.
정말 다행스런 말이 아닐 수 없었다.
우리가 그녀 앞에 섰을 때 그녀는 담담해 보였다.
의외로 그녀를 부둥켜안고 눈물을 펑펑 흘리는 아내가 옆 사람들 보기에 민망했다.
그녀의 얼굴은 조금 수척해 있었으나 마음은 맑아져 있는 것 같았다.
돌아가자는 말에 그녀는 이내 짐을 챙겨들고 따라 나섰다.
긴 길을 걸어 나와 차 문을 열어주자 새로 뺀 차가 좋다는 여유까지 보였다.
정말 그간 우울했던 마음을 모두 가라앉힌 걸까?
뒷좌석에 앉은 그녀가 아내에게 그이를 어떻게 볼까하고 말하는 거 같았다.
그녀를 우선 우리 집에 데리고 들어갔다.
영문도 모르는 작은놈은 이모가 왔다며 좋아 날뛰었다.
나는 충길이에게 이 사실을 알려야 할까 망설여야 했다.
"제수씨 오늘 집에 들어가실 거죠?"
"여기서 하룻밤 자고 갈래요! 이왕 버린 몸 아니에요..."
"그럼 집에는...?"
"알아서 하세요! 강우 아빠 생각대로..."
난감한 일이었다.
충길이가 술로 인사불성이 되어 지낸다는 사실을 말할 수도 없고...
하여튼 나는 사무실로 나가봐야 한다는 핑계로 사무실에 나와 충길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의외로 충길이도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오늘 저녁부턴 술 먹지마!"하자 "그러면 난 무슨 재미로 사냐?"고 오히려 반문을 했다.
막상 제수씨를 데려오긴 했지만 풀릴 길 없는 매듭을 바라보는 느낌이었다.
금방 다가온 퇴근 시간이 찜찜해오기 시작했다.
출장 나갔던 이 대리가 내 앞으로 와 오늘 있었던 사항들을 보고하고, 앞으로 자신의 승용차는 집에 두고 승합차로 출퇴근도 하고 회사 일도 보면 안 되겠냐고 물어 왔다.
나는 제수씨 일로 찜찜한 머리 속이라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여 다시 말해 보라고 했다.
그는 앞으로 사무실로 출근하지 않고 곧바로 회사로 들어가 봐야할 일이 많을 것 같으니 승합차를 끌고 출퇴근했으면 어떠냐 했다.
나는 그렇게 하라고 말했다.
이 대리가 퇴근하자 선이도 퇴근할까 하고 물어왔다.
나는 저녁 얻어먹어도 되겠느냐고 물었다.
그녀는 당장 팔짱을 껴오며 나를 끌어냈다.
왠지 오늘은 집에 들어가고 싶지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어젯밤도 선이 방에서 잤다.
제수씨가 애들도 있고 아내도 있는 우리 집에서 대담하게 몸을 요구해 오진 않을 거지만 그들 부부가 위기에 빠진 요즘 그 장본인을 대해야 한다는 것이 몹시 부담스러웠다.
그런 착잡한 마음으로 선이의 방에 웅크리고 있는 데 핸드폰이 울렸다.
하도 안 받자 저녁을 짓는다고 수선을 떨던 선이가 들여다보며 전화 왔다고 일러주었다.
핸드폰을 열었다.
"당신 어디예요?"
"왜?"
"준호 아빠에게 알렸냐 물어보려고요?"
"알리긴 했는데.. 혹시 옆에 제수씨 있어?"
"애들과 바람 쐬러 나갔어요!"
"오늘 나 안 들어가면 안 될까?"
"준호 아빠 만나 보려고요?"
"아니, 제수씨가 민망스러워 할 거 같아서.."
"알아서 하세요. 그런데 어디서 주무시려고요?"
"그건 내가 알아서 할게!"
"술 많이 드시진 마세요?"
"알았어!"
나는 핸드폰을 꺼버렸다.
그거까지 보고 나간 선이의 손이 더욱 수선스러워졌다.
급기야 쟁그랑! 하고 접시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어디 안 다쳤냐?" 내려다보는 내게 생글 웃었다.
그녀가 차려온 저녁을 먹으며 나는 불쑥 "우리 영화 보러갈까?"하고 물었다.
그녀가 거절할 리 없었다.
영화관들은 괴기 영화 일색이었다.
그 중 한 영화관에 들어간 시간은 9시 반이었다.
시간이 애매했다.
영화는 한참 상영 중이었고 다음 상영 시간은 한 시간이나 기다려야 했다.
망설임 끝에 그냥 들어가기로 했다.
캄캄한 미로 속을 더듬으며 자리에 앉았을 때 의외로 썰렁하다는 걸 느꼈다.
그래서인지 에어컨 바람이 차갑게 느껴졌다.
선이는 팔에 소름이 돋는지 손으로 비비고 있었다.
나는 그녀를 포근히 둘러 안았다.
조용하던 장내에 비명이 터지기 시작했다.
갑자기 나타난 괴물이 사람을 쫓아다니고 있었다.
그녀는 내 가슴에 얼굴을 묻고 펑펑 울 듯한 모습이었다.
다시 화면이 밝아져 얼굴을 들었을 때 정말 그녀의 얼굴엔 눈물이 번져 있었다.
나는 호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그 눈물을 닦아주었다.
상영 막바지 시간에 가까워질수록 음산한 음악과 함께 엽기적인 장면이 수시로 나타났다.
괴물이 사람을 찢어 먹는 장면이 나오자 비명이 또 터졌고 엉엉 울음소리도 들려왔다.
그녀도 얼굴을 내 가슴에 묻고 아예 쳐다보지도 못했다.
나는 그녀의 등을 어루만져 주었다.
얼마 후 괴물이 불타 죽는 장면이 나오며 막이 올라가고 있었다.
장내 불이 켜지자 나는 그녀를 데리고 나와 그녀의 손에 크다란 팝콘을 사 쥐어주고 나도 담배 한 대를 피운 뒤 다시 들어와 자리에 앉았다.
긴 기다림 끝에 장내 불이 꺼지고 화면이 나타났다.
처음은 그저 평화롭기만 했다.
나는 다리를 쭉 뻗고 의자를 젖혀 느긋하게 누었다.
그녀는 뒷 장면을 봐서인지 간을 조리며 화면 속에 빠져 있었다.
가끔 그녀의 손이 팝콘을 쥐어 내 입에 넣어 주었다.
나는 그녀의 손을 꼭 쥐었다.
긴장해서 그런지 찬 에어컨 바람 앞에서도 땀이 젖어 있었다.
그 손을 두 손으로 쥐고 손등을 쓰다듬자 내게 기대어 왔다.
나는 의자를 바로 했다.
그녀의 모습이 몹시 불편해 보였기 때문이다.
내가 그녀의 등에 팔을 두르자 그 손을 잡아다 그녀의 가슴 위에다 꼭 눌렀다.
쓰다듬어 주세요! 하는 몸짓이었다.
그녀는 더욱 내 가슴으로 안겨왔다.
그래도 내가 그 위에 손으로 덮고만 있자 내 턱밑에서 흐릿해진 눈으로 올려다보며 "아빠!"하고 자신의 간절함을 호소했다.
나는 손을 서서히 쓰다듬었다.
그와 동시에 그녀의 손이 어젯밤처럼 내 다리통을 주물러왔다.
그러나 위에까지는 올라오지 못했다.
내 건 이미 터질 듯이 부풀어 있었다.
그러나 어젯밤처럼 일부러 그녀의 손을 끌어다 그곳을 덮고 싶지는 않았다.
잔잔하던 화면이 갑자기 소용돌이치기 시작하자 장내에는 숨소리가 멎었고 언제 터질지 모를 비명을 준비하고 있는 분위기였다.
드디어 오랜 긴장감이 폭발하자 준비한 비명들을 한꺼번에 터트리기 시작했다.
순간 그녀의 팔이 내 무릎 위로 숨어들면서 성난 막대를 건드렸다.
반사적으로 금방 물러나긴 했지만 조금 지나자 다시 은근히 기대어오고 있었다.
어젯밤 그 뜨거운 촉감을 또 한번 느끼고 싶다는 의도적 행동이었다.
나는 모르는 채 그녀가 즐기는 은근한 관능의 몸짓을 버려 두었다.
아니, 그 모습을 보며 나도 은근히 즐기고 있었다는 게 맞는 말일 것이다.
그러나 나의 놀고 있는 반대쪽 손을 끌어다 그녀의 다리 위로 끌어가고자 했을 때 그것은 허락하지 않았다.
그녀의 어느 곳을 만져달라는지 너무나 뻔한 일이라 그것만은 지켜주고 싶어서였다.
얼마 후 우리가 보았던 장면이 다시 나오자 그녀를 일으켜 세웠다.
그녀는 아쉬운 눈치로 끌려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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