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7월 20일 일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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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딸에 대한 내성(耐性)



밥을 한다고 달그락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앉아 있자니 갑갑했다.

좁은 방안에 그 흔한 TV도 한 대 없다니...

그런데 이불이 쌓여진 구석에 손바닥만한 라디오를 발견하고 그걸 틀었다.

중부지방에 집중 폭우가 쏟아져 막대한 피해를 냈다는 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녀가 밥상을 들고 들어왔다.

상을 내 앞에다 사뿐히 놓고 수줍게 수저를 건네는 모습이 마치 새색시 같다는 생각을 했다.



아아-

마냥 이렇게 살수는 없을까?



"TV 한 대 사다줄까?"

"전 라디오가 좋아요! TV는 상상력을 없애 버리잖아요."

"너 생각보다 센티하구나!"

"아직 소녀인 걸요. 꿈 많은..."

"꿈이 뭔데..?"



언젠가 한번 물은 질문 같았다.



"꿈요? 아빠와 이렇게 사는 거!"



나는 숟갈을 놓칠 뻔했다.

또 술 생각이 나는 거였다.

그러나 참았다.



"학교도 다니고.. 나중 좋은 남자도 만나고.. 귀여운 애도 낳고.. 그래야지?"

"에이 망측해요! 전 시집을 가더라도 애는 안 낳을 거예요!"

"왜?"

"그냥요!"

"그래도 이유가 있을 거 아냐?"

"불쌍해서..."



그녀 자신을 얘기하는 것 같았다.

그녀가 숟갈을 놓고 밖으로 나갔다.

괜한 걸 캐물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 후 그녀는 숭늉을 만들어 들고 들어왔다.

그녀의 볼에 보조개는 보이지 않았다.



숟갈을 놓고 숭늉을 받아 마셨다.

그녀는 이슬 맺힌 눈으로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밥상을 옆으로 밀어 놓고 팔을 벌렸다.

그녀는 당장 안겨 왔다.



"아빠가 네 아픈 곳을 건드렸구나?"

"아니에요!"



우린 그렇게 얼마나 껴안고 있었는지 모른다.

어쩜 그대로 그녀가 잠들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라디오에서 9시를 알리는 소리가 들려 왔다.

이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에 그녀를 떼 내려 했다.

그러나 떨어지려 하지 않았다.



나는 옆에 놓인 밥상을 보고는 "밥상을 치워야지!"했다.

그 소리에 달랑 일어났다.

그녀가 그렇게 일어나면 나도 일어서리라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일어서지 않았다.

밥상을 치우고 들어오면 그녀 이마에 뽀뽀를 해주고 가리라 마음을 고쳐먹고 있었다.

그저께 밤 내가 했던 말의 여운을 느끼고 싶어서였다.

이 말이었다.



"아빠도 너만큼 내 딸을 사랑한단다! 예쁜 꿈꾸며 자!!"



설거지가 길어지고 있었다.

나는 이불을 등에 괴고 벌렁 누웠다.

라디오에서는 TV와 동시방송이라며 계속 폭우 소식만 토해내고 있었다.

그녀가 방안으로 들어 왔다가 또 금방 나갔다.

다시 물소리가 들렸다.



라디오 소리에 위쪽에는 저토록 난리를 치면서 왜 여긴 땡볕만 퍼붓는지 하늘도 참 무심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 물소리가 그녀가 샤워하는 소리라는 걸 뒤늦게야 깨달았다.

정말 가야겠다고 생각했지만 그녀가 다시 안으로 들어서자 나는 눈을 감고 말았다.

잠든 척 하기 위해서 만은 아니었다.

그녀가 어느새 잠옷으로 갈아입은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대체 어쩌자는 걸까?

나는 어떤 식으로든 마음을 정리해야 했다.

벌렁 일어나 나가든지, 그제처럼 그녀의 이마에 뽀뽀를 해주고 아쉬운 듯 물러나든지, 안고 뒹굴든지...?

그러나 처음과 마지막은 아니었다.

두 번째로 방향을 잡았다.

아빠로서의 의젓함과 그녀에 대한 사랑을 보여줘야 한다고 마음을 정리한 것이다.



눈을 떴다.

간절한 눈빛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나는 한쪽 팔을 폈다.

그녀를 재워주고 가리라는 생각으로...

그녀는 내 뜻을 어떻게 해석한 건지 그 위에 머리를 뉘어왔다.



"아빠는 늦었으니까 빨리 잠을 청해! 설마 이러며 밤새 나를 잡아둘 생각은 아니겠지?"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내 손을 가슴에다 안았다.

나는 손끝에 느껴져 오는 촉감을 대수롭지 않은 걸로 여기려 애썼다.



"아빠! 이거 아빠가 사주면 아빠 거로 할게요?"

"엄마가 사준 건 내가 사준 거나 같애!"

"아빠가 서운해하시는 거 같아서..."

"아냐! 그런 거 없어...!"



나는 내 마음을 들킨 거 같아 그녀의 머리에 볼을 비볐다.

그때 그녀가 와락 몸을 돌리고 정면으로 안겨왔다.

아찔했다.

그러나 의연해야 했다.



"너 이러다 아빠 오늘 밤 못 들어가겠다! 불 끄고 와!"



그녀는 잽싸게 일어나 불을 껐다.

나는 등에 고였던 이불을 펴 그 위로 몸을 옮기고 그녀의 자릴 만들었다.

그녀가 다시 안겨왔다.

나는 그녀의 등을 토닥였다.



그녀도 정말 잠들려 노력하려는지 나를 껴안았던 팔을 풀고 편하게 누웠다.

내 손이 그녀의 배를 토닥였다.

위로도 아래로도 갈 수 없는 단 한 뼘의 간격이었다.

손 윗 부분이 브레지어에 간혹 닿기도 했다.

팔이 아파 왔다.

나는 토닥임을 멈추었다.



그녀의 숨소리가 고르게 들리고 있었다.

그래서 살며시 팔을 빼내려 했을 때 그녀는 다시 품속으로 파고들고 말았다.

나는 다시 등을 토닥이다 팔이 아파 손바닥으로 쓸쓸 쓰다듬어 주었다.

이제 손끝에 닿는 브레지어 끈은 별로 개의치 않았다.

아래 팬티 매듭도 넘어섰다.



가슴 못지 않게 그녀의 엉덩이도 참으로 앙증맞다고 생각했다.

쓰다듬다가 손아귀에 몰캉 쥐어보고 있었다.

그때 내 가슴에 "아아-!"하고 쏟아지는 숨소리가 들렸다.

더운 입김이 확! 하고 가슴에 번졌다.

그 탓일까 내 아랫것이 어느새 일어서서 그녀의 허벅지를 누르고 있는 게 느껴졌다.



나는 엉덩이를 뒤로 빼며 그녀의 머리를 살짝 들어올렸다.

이번에는 잠자코 있었다.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고 일어섰다.

그때도 잠든 척 꼼짝하지 않았다.

부엌문 도어를 안에서 누르고 밖으로 나와 문을 살며시 닫았다.



밖에 나온 나는 숨을 고르기 위하여 벽에 등을 기대고 한동안 서 있었다.

등에 닿아오는 감촉은 내 몸을 식히기는커녕 눅진한 땀만 나게 만들었다.

발걸음을 옮겼다.

뒤에서 "아빠!"하며 금방이라도 뛰어나올 것만 같았다.

그러나 차에 올라 시동을 걸때까지도 그녀의 그림자는 보이지 않았다.

캄캄한 그녀의 창문을 한참이나 쳐다보다가 악셀을 밟았다.



다음날부터 나는 바빴다.

약속대로 출근한 새 친구에게 '대리' 직함을 주었다.

그의 이름은 이 수홍이고 나이는 29에 딸 하나를 둔 유부남이었다.

그는 A사의 한 납품업체에 스카웃 당하여 나왔다가 그 회사가 망하자 6개월 여 놀았다고 했다.

나는 그 친구를 전적으로 A사의 영업 및 납품을 전담시킬 계획이다.

근무 경험도 있고 납품 경험도 있으니 적격이라 여기고 뽑은 것이다.



미스 진과도 인사를 끝낸 이 대리에게 우리가 취급하는 물건을 익혀주기 위하여 아래 창고로 데리고 내려가 내가 써 붙여둔 제품들의 이름을 외우고 재고량을 조사하라 시키고 올라왔다.

그런데 그는 한 시간도 안 되어 장부를 들고 올라 왔다.

제품들은 거의 아는 물건들이라 제품 수량만 체크하면 되었다고 했다.

나는 아예 납품 관련 서류들과 챙겨야 할 것들을 적어 그에게 인계했다.

너무 자신만만해 하는 모습이 혹시 실수하지나 않을까 두렵긴 했지만 A사의 모든 업무를 맡기니 B사의 초두납품 건에 매달릴 수 있어 어깨 하나가 가벼워진 느낌이었다.



미스 진에게 주문하라 시킨 명함도 내일 아침이면 나온다고 했다.

그런데 차가 문제였다.

그의 승용차가 있긴 했지만 납품과 A/S를 다니자면 승합 또는 포터 정도가 있어야 했다.

나는 이 문제 저 문제 생각 끝에 내가 타고 다니던 승합차는 납품 전용으로 회사에다 두고 새 승용차를 뽑기로 결정했다.

내가 주로 다녀야 할 B사는 거리도 멀거니와 납품 물량이 만만치 않아 그 때에는 용차를 써야할 판이다. 그래도 힘이 부치면 또 한 사람의 직원과 포터도 있어야 할 것이다.



오후 나는 승용차 한 대를 계약했다.

갑자기 늘어난 직원들에다 승용차까지 금방 부자가 된 느낌이 들기도 했지만, 그와 함께 늘어나는 부대 비용을 감안하면 이제부터 사업가로 변신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눌러 왔다.

사실 이제까지는 혼자서 살짝살짝 소꿉살림처럼 꾸려나왔던 나였으므로 마음에 큰 부담 없이 지내온 게 사실이었다.



저녁 마칠 때가 가까워 나는 둘을 모아 놓고 내일 당장 A사의 납품이 있으므로 이대로 나가 간단한 환영 식사라도 하자고 말했다.

우리가 간 곳은 회사 옆 그 한식집이었다.

선이와는 달리 그는 아직 나를 어려워했다.

나이로 봐도 거의 삼촌뻘이니 당연할 것이다.



나는 그의 딱딱한 마음을 풀어주기 위하여 술부터 시켰다.

선이가 일어나 내게 술을 따르며 "아빠!"라 하자 깜짝 놀라는 눈치였다.

나는 술병을 받아 그의 잔을 채워주며 말했다.



"몰랐나 본데 얜 내 딸이야! 아직 학생인데 아빠를 돕는다고 휴학까지 하고 이렇게 붙어서 촐랑대고 있어!"

"아! 정말 몰랐습니다. 미스 진은 대학생인가 보죠?"

"아니, 고등학생! 말썽꾸러기 막내라고... 골치 아파!"

"피이--!"



선이에겐 콜라 잔으로 우린 건배를 했다.

그는 고개를 돌리고 술잔을 비웠다.



"야 이 대리! 그러지 마? 나 슬퍼! 기껏 둘째 형뻘인데 자꾸 그러면 늙는 게 서러워져?"



그래도 이 대리는 끝끝내 마주 보고 술을 마시지 못했다.

거기서 배도 채우고 술도 채우고 나온 우린 노래방으로 향했다.

정말 세대 차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흘러간 옛노래나 부르는 나와 톡톡 튀는 신세대 노래를 불러대는 그들...

내일이면 나이 서른이 되는 그도 선이의 노래를 거의 따라 부르고 있었다.

선이는 마이크를 한번 잡자 대 여섯 곡을 연달아 불러댔다.

그에 박자를 맞추느라 이 대리도 일어서서 탬버린을 두드리고...

나는 책을 뒤지고 뒤져 겨우 그들과 가깝다고 찾아낸 곡이 김현식의 '사랑했어요'였다.



음악이 나오고 내가 일어서자 그들도 일어섰다.

술기운일까?

분위기 탓일까?

나는 이 대리가 있다는 걸 망각하고 내 손은 선이의 허리를 감고 있었다.

방안 가득히 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돌아서 눈감으면 잊을까

정든 님 떠나가면 어이해

발길에 부딪히는 사랑의 추억

두 눈에 맺혀지는 눈물이여

이제와 생각하면 당신은

내 마음 깊은 곳에 찾아와

사랑은 기쁨보다 아픔인 것을

나에게 심어 주었죠



사랑했어요 그땐 몰랐지만

이 마음 다 바쳐서 당신을 사랑했어요

이젠 알아요 사랑이 무언지

마음이 아프다는 걸



돌아서 눈감으면 잊을까

정든 님 떠나가면 어이해

발길에 부딪히는 사랑의 추억

두 눈에 맺혀지는 눈물이여



정말 나의 눈에는 눈물이 맺히는 거 같았다.

다소곳이 얼굴을 파묻고 있던 선이의 눈에도 눈물이 맺혀 있었다.

다시 내 간절한 목소리가 터지기 시작했다.

선이는 내 손에다 허리를 맡기고 단 한마디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이 내 입술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사랑했어요 그땐 몰랐지만

이 마음 다 바쳐서 당신을 사랑했어요

이젠 알아요 사랑이 무언지

마음이 아프다는 걸



돌아서 눈감으면 잊을까

정든 님 떠나가면 어이해

발길에 부딪히는 사랑의 추억

두 눈에 맺혀지는 눈물이여

~



노래가 끝났을 때 이 대리가 부러운 듯 말했다.



"두 분 모습 너무 보기 좋습니다! 난 언제 딸을 키워서 사장님처럼 해 보지요?"

"올해 몇이라 했더라?"

"세 살이요!"

"열심히 키워 봐!!"



다음 선이가 부른 노래는 '오빠'라는 노래였다.

나는 그 박자를 맞출 수 없어서 자리에 앉았다.

대신 이 대리가 일어서서 열심히 탬버린을 두드렸다.



그냥 편한 느낌이 좋았어 

좋은 사람이라 생각했어 



하지만 이게 뭐야 

점점 남자로 느껴져 

아마 사랑하고 있었나봐 



오빠 나만 바라봐 

바빠 그렇게 바빠 

아파 마음이 아파 

내 맘 왜 몰라줘 

오빠 그녀는 왜 봐 

거봐 그녀는 나빠 

봐봐 이제 나를 가져봐 

이제 나를 가져봐 





왜 날 여자로 안 보는 거니 

자꾸 안 된다고 하는 거니 



다른 연인들을 봐봐 

처음엔 오빠로 다 시작해 

결국 사랑하며 잘 살아가 



오빠 나만 바라봐 

바빠 그렇게 바빠 

아파 마음이 아파 

내 맘 왜 몰라줘 

오빠 그녀는 왜 봐 

거봐 그녀는 나빠 

봐봐 이제 나를 가져봐 

이제 나를 가져봐 



Rap) 

this is the time to rock I see the your future now 

are you feel me are you feel me 

break your brain crack your mind 

only for the crazy my time follow wax follow wax 

everybody come on baby wax 



아무 것도 아니라 해도 

나는 상처받아 (나는 상처받아) 

이런 내가 싫다해도 

지쳐버릴 내가 아냐 



오빠 나만 바라봐 

바빠 그렇게 바빠 

아파 마음이 아파 

내 맘 왜 몰라줘 

오빠 그녀는 왜 봐 

거봐 그녀는 나빠 

봐봐 이제 나를 가져봐 

이제 나를 이제 나를 

이제 나를 가져봐 



나는 노래는 따라 부를 수 없었지만 화면에 뜨는 글자들을 읽었다.

그런데 분명히 '오빠'인데 그녀는 '아빠'로 부르는 거 같았다.

그리고 마지막 구절에 액센트가 들어가는 부분은 정말 자극적이었다.

젊은이들 노래 중에는 저런 당돌한 노래도 있구나 낯이 화끈거렸다.

그 후에도 그녀는 많은 노래를 하고 그곳을 나왔다.



분위기가 뜬 나는 한 잔 더 하고 싶었다.

그러나 이 대리는 "집사람이 아파서.."하고 사라졌다.

그건 거짓말일 것이다.

아마도 앞으로 그가 모셔야 할 사장인 내가 부담스러워서 일 것이다.

나는 선이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올려다보며 히죽 웃었다.

얼굴이 발개져 있었다.

노래를 그토록 불러대더니 열 꾀나 난 모양이었다.



"우리 우동이나 한 그릇 하고 갈까?"



길모퉁이에 쳐진 포장 마차로 들어갔다.

우동이 금방 나왔다.



"아줌마 소주 한 병도 주세요?"

"안돼요, 아빠!"

"또 왜 그러니? 오늘 이 아빠 기분 좋은데..."

"그럼 맥주로 하세요!"

"그럼 그래라!"



맥주와 잔 두 개가 날라져 왔다.

내 잔을 채워주며 자기 잔에도 채우는 거였다.



"넌 안돼! 콜라 해!"

"나도 할거야! 안에서 아빠 잔 내가 슬쩍한 거 몰랐지?"



그래서 얼굴이 발갰구나..



"딱 한 잔이다?"



한 잔을 그녀가 뺏어가 버리자 두 잔밖에 안 나왔다.

한 병을 더 시켜 마시고 일어섰다.

내 걸음이 비틀했다.



"나도 이제 늙었나 보다...!"



나를 부축하여 걷는 그녀 앞에 실없는 푸념을 하고 있었다.

얼마 안 멀리라 여겼던 그녀의 집에까지 오는 데엔 꾀나 시간이 걸렸다.

그녀는 아침마다 이 길을 걸어서 출근한다 했다.

하긴 그리로 다니는 버스도 없다.

집에 거의 가까웠을 때 그녀가 불쑥 말을 내뱉었다.



"아빠! 자꾸 그런 말하면 아빠 미워할 거야?"

"뭔 말?"

"늙었다니..?"

"사실이 그렇지 않아?"

"싫어! 그딴 말 싫다고...!"

"알았어 알았어! 딸 무서워서 늙지도 못하겠네!"



제발 그랬으면.. 제발 그래줬으면... 속으로 내뱉었다.



"아빠 집에 들어가 커피라도 한잔하시고 가?"



그녀가 그러지 않아도 나도 그럴 요량이었다.

술도 취하는 데다 걷느라 다리도 아파 왔다.

방에 들어서자마자 그녀는 이불을 깔고 그 위에 나를 눕혔다.



"아빠 다리 아프지?"



조그마한 손이 다리를 주물러댔다.

그러다 금방 일어나 밖으로 나가선 커피를 끓여 들고 들어왔다.

커피믹스였다.

프림을 안 타먹는 나로선 맛이 밍밍했지만 속이 데워지는 느낌이었다.

다시 그녀의 손이 다리를 주물렀다.



"너도 다리 아플 텐데 그만 해!"

"잠시 눈 부치실래요?"

"그러자꾸나.. 피곤해.."



불을 끄고 밖으로 나가는 그녀를 보며 스르르 눈이 감겼다.

얼마의 시간이 흐른 줄도 모른다.

와중에도 집에 가야지! 하고 눈을 번쩍 떴다.

밖은 캄캄했다.

흐릿하던 눈이 밝아오자 방안으로 달빛이 새어 들고 있는 게 보였다.



이 도심에서 달빛이라니...

그 센티멘털한 감정은 눈을 뜬 목적을 망각하게 했다.

팔이 무거웠다.

팔을 벤 그녀가 곤히 잠들어 있었다.

그녀를 보듬어 안고 등을 쓰다듬었다.



아아--!

이 야릇한 행복감이 언제까지 갈 것인가?

얇은 꺼풀 안으로 금방이라도 톡! 하고 터질 것만 같은 여린 살덩이가 잠들어 있었다.

그 살덩이는 이미 내게 모든 걸 맡기고 있는 철없는 욕망 덩어리이기도 했다.

그건 내가 지켜줘야 할 금제의 덩어리였다.

그렇게 설정해 놓고 서로 약속한 땅이기에 가능한 행복이리라..



톡톡 엉덩이를 토닥였다.

팔이 내려가는 최대한 먼 곳까지 주물러 주었다.

내 다리가 아팠듯이 그녀도 아팠으리라.

그녀의 몸을 덮었던 화사한 달빛이 떨리고 있는 것 같았다.

달이 구름 속에 파고든 듯 잠시 엄습한 어둠이 방안을 채워올 때 나는 그녀의 머리 밑에서 팔을 살며시 빼냈다.



그리고 그 자리에 베개를 넣어 주고 내가 덮었던 이불을 그녀 품에 안겨 주었다.

옷을 여미며 일어서서 그녀를 내려다보았을 때 어느새 다시 들어온 빛이 그녀 위를 뽀얗게 덮고 있었다.

그녀는 아직도 내 품속인 듯 이불을 감싸안은 행복한 모습이었다.

그 행복한 모습은 내가 그녀를 지켜줄 때만 가능하리라.



다리 하나가 이불을 감고 올라서서 허연 다리통이 눈을 부시게 했지만 나는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다.

문을 잠그고 돌아서며 앞섶을 더듬어 봐도 태연한 모습이었다.

나도 이제 그녀에 대한 내성이 쌓여 가는 모양이라 생각하며 거길 빠져 나와 터덜터덜 내려가고 있었다.

하늘을 올려다보자 구름과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는 달은 초라하기만 했다.






<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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