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고백으로 물든 파티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부터 고소한 냄새가 났다.
그런 냄새를 온 아파트에다 풍기면서까지 자축 파티를 벌일 만한 일인지 반문했다.
하긴 그때도 그랬다.
충길이와 내가 나란히 차장으로 진급하던 날 그 아파트의 통로 전체가 축제를 벌인 적이 있었다.
그도 나도 때늦은 파티였다.
동 연배의 친구들은 부장이 되어 있는 마당에...
그럼에도 우린 뿌듯했다.
오랜 가뭄 끝의 단비여서 일까?
같이하는 친구가 있어서였을 거다.
국내에서 명문 그룹이다 보니 지방대학 출신들은 힘을 못 썼다.
그래서 과장 진급 시부터 제동이 걸리는 걸 못 견뎌서 대부분 옷 벗고 나가고 부서장인 부장급 이상은 내놓으라 하는 명문 대학 출신들이 거의 점령하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고진감래 끝에 문턱을 밟고 올라섰으니...
양손에다 튀김 재료를 쥐고 있던 제수씨가 나를 보고 인사 대신 눈을 찡긋했다.
그도 그럴 것이 입에도 뭔가 물고 있었기 때문이지만 그 인사에 왠지 내 몸이 달았다.
충길이는 내 아내에게 다가서며 짓궂은 농으로 인사를 건넸다.
"워이 우리 제수씨, 사장 사모님 되더니 몸매가 더 날씬해졌네!"
금방이라도 안을 듯 다가서자 아내는 들고 있던 행주를 팽개치고 달아나며 외쳤다.
"얘 윤영아, 네 서방 군기 빠졌나봐? 후훗.."
"어때 한번 안아줘라! 젖도 물려주고.. 호호호..."
애들은 모두 작은놈 방에 들어가 편을 나눠 게임을 벌이느라 정신이 없었다.
얼마간 못 봤던 충길이네 애들의 키가 정말 몰라보게 커 있었다.
아마도 이제 쟤들 아빠보다도 커 보였다.
좁은 방에 그런 놈 네 놈이 들어앉아 있어서 마치 시골의 곡식을 넣어두는 광처럼 느껴졌다.
창문틀엔 어느 놈이 피운 건지 꽁초도 얹혀 있었다.
설마 우리 애들 중에...
내가 그들 방에서 나왔을 때 욕실에서 샤워를 마친 충길이가 나오고 있었다.
"준호(그네 마누라를 부르는 소리일 듯)야! 우리도 빨리 사장되어 이리로 나와야겠다!"
"왜요?"
"물이 너무 시원하다."
"지하수라잖아요. 거기에다 300미터 암반에서 뽑아내는 육각수라나 뭐라나..."
내가 끼여들었다.
"제수씨도 샤워 좀 하시죠? 요금은 반으로 할인해 드릴 테니..."
"안 그래도 강우아빠 오심 같이 하려고 기다리다 혼자 했어요. 강우아빠와 같이 들어가면 공짤 거 아니에요. 후훗.."
"그랬음 더 비싸게 쳤을 건데요. 때밀이 값까지 받아야 하니까.. 분하다, 분해!"
"지금이라도 당신 아르바이트 좀 해요! 준호 엄마 튀김 만든다고 온통 땀일 거예요."
아내도 뛰어들며 한 말이었다.
껄껄 웃으며 충길이가 거들었다.
"그래, 짐도 그렇게 생각하노라. 짐이 윤허하노라.. 껄껄껄.."
"어명을 거역하면 끽! 이겠지? 어쩐다?? 호호호......"
우린 모처럼 옛 시절도 돌아간 듯 찐한 농을 즐겼다.
문이 열린 애들의 귀엔들 왜 안 들어갔겠냐마는 워낙 오래 전부터 들어오던 어른들의 그런 농담이라 그들도 대수롭지 않을 것이다.
다른 집 사람들이 와 들어보면 도저히 납득이 안 될 그런 일이리라...
성질 급한 충길이 냉장고에서 맥주를 꺼내어 들고 나오는 모습을 보며 나는 욕실로 들어갔다.
서로의 집에선 주인과 객이 따로 없이 살아온 우리들이었으므로....
욕실로 들어가 옷을 모두 벗고 거울 앞에 섰을 때 왠지 내 물건은 벌떡 서 있었다.
욕실 안에서 그 모습을 보는 게 얼마만인지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방금 그 농담들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선이를 무사히 내 품안으로 끌어들인 탓일까?
밖에서도 그러했을지 생각하니 민망하기 이를 데 없었다.
나는 그걸 성큼 쥐고 쓰다듬어 본 뒤 낮 내내 땀에 저린 몸에다 물을 뿌렸다.
물은 정말 차가웠다.
등이 오싹할 정도로 차가웠건만 아랫것은 시들지 않았다.
제발 사그라들기를 주문하며 찬물을 몇 번이나 끼어 얹었다.
그럴수록 더욱 고개를 쳐드는 모습이 뭔가 항명하고 있다는 기분도 들었다.
이대로 나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모종의 조치를 취해야 했다.
젊은 날의 그때를 회상하며 수음을 서둘렀다.
거울을 쳐다보자 끙끙대는 내 모습이 가관이었다.
이것이 안 되어 마누라 위에서 낭떠러지로 떨어져 내리던 게 불과 몇 일 전의 일이었는데 아까운 그걸 이렇게 허비해야 하다니...
허연 물이 허공을 갈랐다.
거울 위에도 그 방울이 튀어 주루룩 미끄러져 내리고 있었다.
나는 샤워 콕을 들고 그것들은 씻어 내렸다.
내 그것도 그때에야 슬며시 고개를 내리 깔고 있었다.
밖으로 나오자 충길이 혼자 벌써 두 병을 비우고 있었다.
아내와 제수씨는 밥상을 차리고 있었다.
충길이가 술잔을 내게 밀며 말했다.
"야, 축하한다!"
"부끄럽네. 자네 도움이 없었으면 언감생심 꿈이나 꿀 일인가?"
"다 그렇게 사업하는 거 아냐? 그렇게 생각 말게! 그리고 너와 내가 언제 니꺼 내꺼 따지며 살았나... 며칠 있다 지리산에서 그런 맘 다 묻고 옴세??"
그 말을 준호 엄마가 들은 모양이었다.
"같이 가기로 결정했어요? 강우(큰놈 이름 : 나의 아내)야! 같이 가기로 했단다!!"
"당신 정말 그러기로 했어요?"
"안 그랬다간 동네가 시끄러울 것 같아서...."
"겹 경사네!!"
아내는 겹 경사라 할만큼 좋은 모양이었다.
하긴 저쪽에 살 땐 매 여름마다 그랬다.
그러다 지난해 내가 회사를 뛰쳐나와 실업자로 떠돌면서 휴가는커녕 마치 실심한 사람처럼 외톨이가 되어 있던 내게 감히 휴가 얘기도 못 꺼냈던 그녀였었다.
우르르 몰려나온 애들과 모처럼 대 가족이 한 자리에 모인 만찬이었다.
우리들에게 파티란 이런 것이었다.
남들처럼 풍선을 달고 케익을 끊고 그러한 것보다 훨씬 우리다운 것이었다.
역시 장성한 애들의 먹성 좋은 모습은 우리 어른들의 행복이었다.
아까 창틀에 놓여진 담배꽁초를 보긴 했지만 다들 착하기만 한 애들이었다.
그들이 숟갈을 놓고 우르르 물러가자 너른 거실에서 우린 마치 뼈만 남은 생선처럼 앉아 있었다.
나는 충길이와 먹다만 맥주를 들고 서재로 들어갔다.
조금 있자 작은 상에다 안주를 차려 온 제수씨가 충길이의 술잔을 뺐으며 말했다.
"당신 이제 고만 해요! 나 밤 운전 못한단 말예요. 대신 내가 대적할 테니까..."
"에고, 그 놈의 차로 또 족쇄를 채우려네! 차야 세워두고 내일 가져가면 되지 뭐?"
"내일 아침 일찍 또 출장가야 한다면서, 뭘!!"
"그래라. 자넨 벌써 취했어. 큰방에 가서 한숨 자!"
"정 그러면 난 제수씨 설거지나 거들어야겠다...!!"
"그래요. 강우 엄마더러 좀 재워 달래시구려... 자 한 잔 주쇼??"
나는 제수씨의 잔을 채워 주었다.
밖에서 아내가 "어맛!!"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충길이가 짓궂은 장난을 치는 모양이었다.
"하여튼 저 친구는....?"
"어맛! 강우 아빠 질투 느끼나 보네??"
"질투는.. 새삼.. 자 받아욧, 장군!!"
그녀는 단번에 비우고 밀었다.
"멍군이얏!!"
그때 아내가 뛰어들며 말했다.
"나도 한잔 줘욧! 한번 안겨준 대가로 설거지 벗.었.다. 네 서방 그냥 부려먹는 거 아니라는 거 너도 들었지?"
"잘 했어! '여자는 용감했다!'는 말도 있잖니. 후훗.."
"정말 차 몰고 갈거니?"
"저이 내일 일찍 출장이래."
"여기서 자고 아침에 바로 가면 되지 뭐? 애들도 방학인데..."
"그럴까?"
"그러세요! 고속도로 타는 출장지라면 여기가 훨씬 가깝지.."
제수씨가 나갔다 오더니 아침 회사에 들러 서류를 챙겨가야 하기 때문에 안 된다는 말이었다.
아내도 일어서서 둘이 나가버리자 졸지에 홀로 되고 말았다.
술이 오르는지 이맛살에 땀이 맺히는 게 느껴졌다.
선이가 그 길로 나가서 혹시 다방에 들러지나 않았나 걱정되었다.
다시는 거길 가지 말라는 당부를 빼먹었다고 뉘우쳤다.
낮에 백화점에서 내가 골라준 옷을 갈아입은 모습으로 마치 패션 쇼라도 하듯 뱅글 돌아 보이며 행복해 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 옷을 받아들고 나오며 남들이 보든 말든 당돌하게 내 옆구리를 끼던 모습이 떠올랐다.
"무슨 좋은 생각이라도...?"
아내였다.
"낙찰 건으로 그래요? 그건 저도 그랬어요."
"아 그래! 너무나 꿈만 같아서..."
나는 그렇게 우물우물 넘겼다.
그러나 내 속내의 반 이상은 그녀에게 들켰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제수씨가 들어왔다.
"준호 아빠 잠 드셨니?"
"응! 우리 그 양반 베개만 고이면 잠드는 분 아니니.."
"난 네게도, 준호 아빠에게도 너무 고마워서 뭐라 감사해야 할지 모르겠어...?"
"야, 그런 말 마! 울 그이 이번만큼 기뻐하는 거 처음이야. 내가 되려 고마워해야지..."
"아무튼..."
둘이 손을 꼭 잡고 있었다.
한 일 없는 내가 되려 민망했다.
그걸 눈치챈 제수씨가 벌떡 일어서며 말했다.
"명색이 오늘 강우 아빠의 낙찰 기념파티인데 여기서 이렇게 시간 죽일 수 있니? 내가 한방 쏘마, 나가자!"
"어디를...?"
"늙은이들이 갈 데가 어디 있겠니? 밤바람이나 쐬러..."
우리는 그녀에게 이끌려 밖으로 나왔다.
때때로 강바람이 불긴 했지만 여전히 더웠다.
이런 날 술을 더 먹는 건 무리였다.
그냥 그렇게 걸어서 시원한 강으로 갔으면 했다.
그러나 그녀는 택시를 세웠다.
앞자리에 탄 제수씨는 기사에게 어디로 가자고 속삭였다.
옆에서 손을 잡아오는 아내의 손을 꼭 쥐었다.
어디를 가는 건지 차는 강변을 한동안 달리더니 신호등에서 핸들을 90도로 꺾어 시내 한복판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그녀가 우리를 내려놓은 곳은 휘황찬란한 네온이 번쩍이는 나이트클럽 앞이었다.
"여기로 가자고 했니?"
"좋찮니? 이열치열 땀 좀 빼자고..!!"
오히려 대접해야 할 우리로선 따를 수밖에 없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옆집에서 살던 그 집에서도 이런 곳에 같이 와본 적은 한번도 없었던 것 같았다.
말술이라도 마다 않는 충길이지만 몸을 서로 비비는 춤에는 젬병이었다.
제수씨는 본 적이 없지만 활달한 성격으로 보아 그 정도는 아닐 듯 했다.
대신 우리 집에선 반대인 셈이었다.
동적인 활동에는 거의 취미가 없는 아내에다, 나는 동적인 활동을 즐기는 편이었다.
하긴 요즘의 나는 많이 변하여 서서히 아내를 닮아가고 있는 상태였다.
모든 것에서 자신감을 잃고 만 탓이리라..
벅적대는 속에서 자리를 잡고 앉은 앞으로 술이 날라져 왔다.
벌써 제수씨는 어깨를 우쭐거리고 있었다.
한잔씩들을 비우자 그녀는 우리를 일으켜 세웠다.
온통 젊은이들 투성이인줄 알았는데 앞엔 우리 나이 뻘들도 제법 보였다.
생각 해보니 젊은이들은 모두 산이나 바다로 떠나고 남은 늙은이들만 기껏 여기 와서 더위를 식히는 게 아닐까 생각되었다.
제수씨는 생각보다 춤을 잘 추었다.
기껏 엉덩이만 실룩대는 아내를 요리조리 가르치는 모습 같았다.
나는 그러는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보며 나름대로 땀을 뺐다.
요란한 음악이 멈추자 우리는 자리로 돌아왔다.
"강우 엄마 가두어만 두지 말고 이런 데도 좀 데리고 다니고 그러세요?"
"그런데 제수씨는 충길이가 춤에는 젬병인데 어떻게 그렇게...?"
"시에서 하는 문화 스케줄이 많아요. 맞아, 너도 그런데 한번 다녀봐?"
"내가 시간이 어딨니??"
"이봐 얜 이렇다니까..."
아내는 술만 꾸역꾸역 마셨다.
다음에 또 음악이 시끄러워지자 함께 나갔으나 아내는 도중에 포기하고 들어가 버렸다.
내가 아내를 잡으려 했으나 제수씨가 나를 말렸다.
"싫은 건 싫은 거예요. 우리끼리 땀이나 빼요!"
나는 그녀를 접대하는 입장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의 몸놀림에 맞추어 나도 정신없이 흔들었다.
런닝 안이 젖어오는 게 느껴졌다.
그녀의 콧잔등에도 땀이 송글송글 맺혀 있었다.
다시 음악 소리가 느려졌다.
자리로 돌아가려는 내 손을 그녀가 잡았다.
저쪽 자리를 보자 등을 돌린 아내가 등받이에 머리를 기대고 있는 게 보였다.
몹시 피곤하리라...
내 어깨에 그녀의 손이 얹혀져 왔다.
그리고 맞잡은 손을 이끌었다.
나도 더 이상 수동적일 수만은 없었다.
그녀의 허리를 감아쥐었다.
낭창한 허리가 단번에 안겨져 왔다.
그녀는 그간 배웠다는 춤을 시험이라도 하듯 나를 이리저리 끌고 다녔다.
그러면서 가슴과 허벅지로 내 몸을 터치했다.
나는 그렇게 몸을 비비면서 틈이 생길 때마다 그녀의 목뒤로 아내가 있는 자리 쪽을 살폈다.
아내는 그 모습으로 잠이 든 건지 아예 나를 그녀에게 맡겨버렸다고 마음을 비워버린 건지 매번 그 자세로 기대어 있었다.
음악이 점점 늘어지면서 엿가락처럼 곧 끊어질 듯 애를 태울 때 그녀는 내 귀에다 대고 이렇게 속삭였다.
"강우 아빠는 여전하시죠?"
나는 무슨 말을 묻는 건지 뜻을 몰라 "무슨 뜻..?" 하고 반문했다.
그때 그녀의 허벅지가 내 그곳을 건드렸다.
내 것이 불룩해 있다는 걸 나도 그제야 알아차리고 몸을 뒤로 뺐다.
"울 그인 맨날 술만 먹다보니.. 벌써... 서너 달이 지난 거 같아요!"
나로선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도저히 믿기지 않는 부분이기도 했다.
오늘만 하더라도 내 사무실에서 선이에게 은근히 헛물을 켜든 그가 아니던가?
그럴 수가...?
"혹시 여자라도..?"
내가 할 말이 아니었으면서도 불쑥 그렇게 묻고 말았다.
어깨에 올려진 그녀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차라리 그랬으면.. 차라리..."
어느 날 아내가 나에게 한 말과 비슷했다.
여자들의 속성이 정말 그러할까?
아냐, 아니야... 그건 아닐 거야!
나는 그녀의 허리를 두른 손으로 등을 쓸어 주었다.
순간 그녀의 몸이 갑자기 도전적으로 비벼왔다.
"어떡해요? 어떻게... 해요...........?"
"제수씨 너무 상심하지 마세요. 일시적인 일일 겁니다...!"
"제발.. 제발 그랬으면...."
그녀의 허벅지가 앞섶을 눌러 왔을 때 이번에는 피하지 않았다.
"나도 잠시 그런 적이 있었어요. 그러나 얼마 후 극복이 되더라구요..."
"강우 아빠도...?"
"네! 그런데... 그런데 제수씨 얼굴을 떠올리다 저절로 살아났어요."
"저를요?"
"네! 그러니..."
"아아!"
음악이 바뀌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눈에 맺힌 눈물을 닦아주고 자리로 끌고 들어왔다.
아내는 우리가 들어오자 눈을 떴다.
"너 몹시 피곤한 모양이구나?"
"네게 정말 미안해!"
"그래, 그럴 거야. 이제 우리 가요! 어지간히 땀도 뺐으니...."
집으로 돌아왔을 때 충길이는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우리 앞에 수박을 쓸어 놓은 아내는 거실 소파에 누워버렸다.
잠시 샤워를 마치고 나온 제수씨를 본 나는 거실에 불을 끄고 서재로 들어가자고 했다.
아내가 너무 피곤해 보여서 편히 잠들게 해 주고 싶어서였다.
재수씨도 내 마음을 읽고 내실을 뒤져 얇은 이불을 찾아나와 아내에게 덮어주고 와선 내 앞에 앉았다.
"술 한잔 더 하실까요?"
"그래요. 가볍게..."
나는 찬장 속에서 진을 꺼내고 냉장고 안의 사이다를 꺼내어 어색하게 칵테일을 만들었다.
어디서 들었거나 배운 것은 결코 아니었다.
언젠가 그렇게 섞어 먹어보니 먹을 만 해서 그렇게 만들었을 뿐이다.
그걸 들고 그녀 앞에 내어 밀자 신기한 듯 컵 안을 살피며 물었다.
"이거 양주 아네요?"
"마셔 보세요? 먹을만 합니다."
"그래도 이건 꼭 애 오줌 같다아..? 호호호...!"
내 다리를 쿡 찔렀다.
농담이라는 뜻이었다.
한 모금을 마셔본 그녀가 좋다고 엄지손가락을 올려 보였다.
방안에 든 선풍기가 돌면서 그녀의 치마를 걷어올렸다.
내 시선이 그곳을 스친 것을 그녀가 본 듯 했다.
"제수씨, 아까 그거 너무 상심 마세요! 그놈 그렇게 주저앉을 놈 절대로 아니니..."
내 시선이 들킨 데에 대한 시선 회피용이었다.
그녀는 고개를 흔들었다.
가망 없다는 뜻인 듯 했다.
아니면 포기하고 있다는 뜻인지도 모른다.
"언제부터 그랬는데요?"
"거의 1년 가까이..."
"저와 비슷하군요. 저의 경험으로 보면 당하는 나보다 강우 엄마가 더 놀라더군요. 그런데 그게 더 위축시킨다는 걸 병원 가서야 알았어요."
"강우 아빤 병원까지 가 봤군요. 그러나 우리 준호 아빤 거기 갔다 나오면 인생 끝나는 줄 알아요!"
"전들 제 자의로 갔겠어요. 강우 엄마 성화에 못 이겨서 갔지요. 그러나 가봐도 별 수가 없더군요. 의사가 하는 말이 기계도 50년을 쓰는 기계가 있냐며 이제부터 약물에 의존하라 하더군요. 빤히 보이는 장삿속만 느끼게 하더군요."
"그런데 어쩌다 다시...?"
그녀의 생각을 했다는 얘기를 다시 듣고 싶어하는 눈치였다.
그녀의 볼이 발갛게 상기되어 있었다.
치마를 슬쩍 내려봤으나 바람에 안 들리도록 손으로 앞을 누르고 있었다.
"글쎄요? 되도록 자극이 갈만한 것들을 떠올리려 하다보니..."
"강우 아빤 저의 알몸조차도 본 적이 없잖아요?"
"왜요? 꼭 알몸을 봐야 하나요?"
"하긴 한 통로 옆집에서 10년 이상 살았으니... 볼 거 못 볼 거 다 보였을 거예요."
"허허허..."
"솔직히 저도 보았지요. 우연히... 그리고 애 아빠와 그러면서도 강우 아빠를 떠올린 적도 있지요.."
충격적인 고백이었다.
그녀가 잔을 비우고 나자 두 잔 모두 비었다.
나는 다시 칵테일을 만들기 위하여 주방으로 나왔다.
가는 아내의 코고는 소리가 들렸다.
다시 불을 밝힐 수는 없었다.
그래서 진과 사이다와 얼음, 그리고 칵테일 할 병을 챙겨 들고 서재로 다시 돌아와 책상 위에다 그것들을 주르르 늘어 넣고 칵테일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신기했던지 그녀도 일어나 뒤에서 지켜보았다.
내가 병 속에 진과 사이다, 그리고 얼음을 채우고 바텐더의 그들처럼 병을 흔들기 시작했을 때 뒤에서 허리를 감아오는 손길이 느껴졌다.
불편했지만 그대로 하늘로 치켜올리기도 하고 바닥으로 내리기도 하며 그들처럼 폼을 내어보려 마구 흔들었다.
"제발.. 우리 준호 아빠 좀 살려 주세요?"
그 말은 말뜻처럼 충길이의 부전증을 살려달라는 말이 아닐 것이다.
의사도 아니고, 그 분야의 전문가도 아닌 내게 그런 능력이 있다고 그녀가 믿는 건 아닐 것이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그 말은 그녀를 달래어 달라는 뜻인 듯 했다.
나는 흔들던 손을 멈추고 엉거주춤 돌아섰다.
그녀는 내 목에 팔을 두르며 얼굴을 목에 기댔다.
"너무 낙망하지 말아요. 나도 충길이도 제수씨나 우리 집사람을 같은 반려자로 여긴지 오래라 서로 채울 수 없는 게 있다면 누가 채워 주어도 탓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생각해요. 그런 면에서 제수씨나 강우 엄마도 같은 생각이라 여겨요. 하지만 자칫 그러다 충길이를 버릴까 그게 두려운 거예요. 우리 힘을 모아 옛처럼 같이 젊어져야 하지 않겠어요?"
그녀의 손에 힘이 빠지는 게 느껴졌다.
그녀가 몹시 부끄러워할 말을 내가 했구나 하고 느꼈다.
얼마나 무안하고 자신이 요구한 것이 또 얼마나 민망할까?
나는 손에 쥐고 있던 칵테일 병을 내려놓고 손을 내리며 돌아서는 그녀를 붙잡았다.
그녀의 가슴에 손을 두르고 그녀의 목에 입술을 갖다대자 와락 돌아섰다.
입술이 겹쳐졌다.
"윤수씨 미안해요! 미안해요...!"
"제수씨 사랑해요! 사랑해요! 꼭 같이 사랑해요...!"
"저도 꼭 같이...."
그녀의 손이 가슴 밑으로 내려 왔을 때 나는 그 손을 잡았다.
그녀도 억지로 내 손을 뿌리치고 밑으로 치닫지는 않았다.
"오늘은 내가 준비가 미흡해요. 바로 어젯밤 쏟은 걸요. 이건 단지 물거품일 뿐일 거예요. 그러니.. 그러니.. 서로 만족할 날에......?"
"알았어요. 그러다 윤수씨마저 나락을 떨어지는 날은 우린 모든 희망을 잃게 되니까.. 알았어요.. 고마워요 윤수씨!"
그녀는 다시 다소곳이 앉았다.
나는 하다만 칵테일 춤을 다시 추기 시작했다.
그를 올려다보며 그녀는 환하게 웃었다.
그녀의 마음이 진정되었다는 뜻이었다.
서로 미안함이나 민망함 따위도 다 날려버렸다는 뜻이기도 했다.
< 계속 >
sports바로가기
casino바로가기
카톡바로가기
댓글 없음:
댓글 쓰기